문을 여니 보글보글 기름 끓는 소리가 났다. 테이블에 놓인 냄비에선 감자 크로켓이 노릇하게 익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건지세요." 앞치마를 두른 학생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크로켓을 건져 접시에 담았다. 요리 학원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펼쳐진 곳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송곡관광고 실습실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학교를 찾은 새내기들을 상대로 입학 후 받을 실무 교육을 미리 경험하는 체험 수업이 지난달 5일 진행됐다.

다른 교실에선 커피, 무알코올 칵테일, 쿠키, 떡볶이 등의 제조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선배들은 도우미로 나서 예비 신입생들에게 시범을 보였다. 이 학교 호텔비즈니스학과에 입학 예정인 박채영(16)양은 "학교에 온 첫날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할 수 있게 돼 좋다"면서 "졸업 후엔 호텔리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색다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 송곡관광고는 관광·여행·서비스 분야 특성화 고등학교다. 과거 송곡여자정보산업고에서 2012년 이름을 바꾼 이 학교는 관광외국어과와 호텔비즈니스과, 조리과학과 등 3개 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같은 특성화고이지만 과거 정보산업고 시절 이 학교는 취업률과 학업 성취도 등이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학교 측은 "성적 하위권 학생이 입학하고 3학년 때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졸업생 취업률은 10~20%에 불과해 한마디로 학생들로부터 외면받던 학교였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왕덕양 교장 이하 교직원들의 위기감이 학교를 바꾸었다. 지난 2011년 학교를 살리기 위해 이 학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학생들이 원하고, 취업 잘되는 전공 중심으로 학과 구조조정과 교육과정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왕 교장은 "만화영상과와 시각디자인과 등을 없애고 관광·여행·서비스 분야만 남겨 학교를 관광고로 만들었다"면서 "조리, 실무 외국어, 항공 사무 등의 전문 교과 수업 시간을 국·영·수의 2배 가까이 늘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면 식음료 실무 과목을 만드는 등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 교육 과목은 신설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이 학교 정희선 교사는 "수요자(학생) 위주와 실용 커리큘럼으로 개편한 게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스펙 관리'를 위해서도 학교가 나섰다. 방과 후 학교 수업의 90%를 실무 강의로 편성해 학생들이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했다. 조리과학과 학생은 한식·양식·중식·일식·제과제빵 관련 자격증을, 관광외국어과는 중국어·일본어 등 능력시험, 호텔비즈니스과는 바리스타 등의 자격증을 손에 들고 졸업하는 식이다. 학생이 진로를 정하면 관련 기업(총 45개)의 인사 담당자를 1대1로 연결시켜 취업 관련 상담을 받도록 한 것도 주효했다.

이런 노력이 학교를 확 바꾸어 놓았다. 관광고로 개편된 뒤 입학한 학생들이 처음 사회에 진출한 2014년 이 학교 취업률은 47.9%로 2011년(15%)과 비교해 3배 이상 뛰었다. 작년 취업률은 54.7%를 찍었고, 올해는 60%를 바라본다. 문영랑 교사는 "졸업생들이 최고급 호텔 식당과 여행 전문 기업 등에 취업했고, 일부 학생은 미국과 스위스 유명 요리 학교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박정애 교감은 "학생들 입학 성적도 우수해 신입생 대부분 중학교 성적이 상위 20~30% 안에 든다"고 했다. 학교 개혁 5년 만에 명문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부모님이 숯불구이집을 15년 넘게 운영한다"는 이 학교 조리과학과 1학년 변주연(17)양은 "졸업 후 부모님 식당 메뉴에 퓨전 요리를 접목해 일본 전통 맛집처럼 100년 넘게 장수하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에듀